라오스를 다녀온 뒤
개강을 한 지도 어느덧 일주일 정도가 됐다. 수업을 가면 아는 얼굴보다 모르는 후배 얼굴이 더 많은 학번이고, 그래서인지 그다지 개강이 설레지도 않았지만 이번 개강은 조금 특별했다. 8월 중순에 라오스를 다녀와서 아직도 그 곳이 그리운 와중에 라오스를 함께 다녀온 사람들을 학교에서도 계속 만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으리라.
솔직히 이번 여름에 라오스를 다녀온 건 전혀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마감 전날 마이스누에 온 메일 한 통을 보고 후다닥 지원하고(물론 지원서는 진심을 담아서 열심히 썼지만) 바로 그 다음날 서류전형 통과 연락을 받고, 또 다음날 면접을 봤으니까. 모든 절차가 너무 빠르게 지나가서 내가 라오스를 가기 위해 뭔가를 준비한다거나 하는 느낌을 가질 새도 없었다고나 할까? 그래서인지 몇 번의 오리엔테이션을 거치면서도 ‘재밌는 사람들과 재밌게 다녀올 수 있겠구나’라는 막연한 생각만 들 뿐 해외봉사를 떠난다는 기대감과 설렘을 가지기 어려웠다.
그런데 라오스에서의 10박 12일은 내가 처음 가졌던 생각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것이었는지 지금 와서 반성하게 만들 정도로 특별한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공항을 벗어나자 불어오던 습한 바람, 라오스에서의 첫 끼였던 쌀국수, 공터에 뜬금없이 있던 시엔쿠앙으로 가는 비행기를 탄 공항, 에어컨 복불복이었던 숙소, 선착순 접속인 와이파이, 일주일 동안 우리의 아침과 저녁을 책임져준 식당, 열띤 토론과 연기로 얼룩졌던 마피아, 열정적으로 쳤던 마이티, 정전 때 다같이 로비에 모여 떼창했던 노래들과 바닥에 돗자리 깔고 누워 바라봤던 은하수, 밤새 떨었던 수다, 저녁 먹으러 가는 길에 봤던 저녁노을… 당시에는 아무것도 아닌 일상이었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런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우리는 조금씩 더 친해지고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고, 조금 더 라오스에서의 삶을 즐길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감동하게 만들었던 건 라오의 사람들이었다.
본격적인 봉사 전 덕캄마을에 갔을 때 학교에 모여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아이들의 눈망울을 잊을 수 없다. 아이들은 우리를 신기해하면서, 경계하면서, 그러면서 또 설렘 가득한 눈으로 쳐다보았고, 시간이 지날수록 언제 우리를 경계했었냐는 듯이 먼저 마음을 열고 다가와 줬다. 다 같이 뛰어 놀았던 체육 수업, 한국 노래와 율동을 가르쳐줬던 음악 수업, 서로의 얼굴 그리기를 했던 미술 수업. 많이 준비해 가지는 못 했지만 우리의 설명 하나하나 놓치지 않으려고 하고 열심히 참여해주려는 모습이 참 고마웠다. 하지만 아이들과 소통했던 건 이런 공식적인 수업 때보다 오히려 일하고 나서 잠깐 쉬는 시간, 점심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눈을 맞추고 함께 놀 때면 말은 안 통해도 소통이 된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알 수 있었다. 아이들뿐만이 아니라 덕캄마을의 사람들 모두가 그랬다. 더위를 피하고자 하는 우리에게 기꺼이 집 마당을 내주었고, 눈이 마주치면 웃으며 인사해주었다. 그리고 마지막 날 있었던 마을 축제에서 처음 보는 우리의 행운을 빌며 팔찌 매듭을 묶어주던 모습과 함께 술 마시고 춤추며 즐겼던 그 순간이 참 인상적으로 남아있다. 이전에도 해외봉사를 다녀온 경험이 있지만 이렇게까지 현지인의 삶에 깊숙이 들어가 그들의 문화를 체험해 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결국 아이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며 울게 됐을 때, 내가 이 마을과 이 마을의 사람들을 정말 많이 좋아하게 됐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일주일도 안 되는 시간 동안에 말이다!
언젠가는 일상에 쫓겨 라오스에서의 기억도 희미해질 날이 올 것이라는 걸 알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이번 봉사기간 동안 행복했다. 그리고 이 기억들을 공유할 수 있는 너무나 좋은 사람들과 함께했다. 그럼 된 거 아닐까? 언젠가 다시 이 나라를 찾을 수 있길 기대해 본다 :)
생활과학대학 이지원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