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활동을 결심하게 된 각자의 사정과 이유는 모두 다를 겁니다. 어떤 이는 봉사가 너무 좋아서, 어떤 이는 일상이 힘들어서, 어떤 이는 졸업 전에 한번은 이런 경험이 하고 싶어서. 저는 이번 봉사가 한국에서의 삶에 쉼표를 주는 시간이기를 바랐습니다. 4학년 1학기가 끝나고, 취업과 불투명한 미래, 이 모든 것에 숨 막힘을 느끼던 평범한 졸업반 대학생이었던 ‘나’를 벗어나 새로운 나를 돌아보고 싶었습니다.
이번 해비타트 봉사는 스누봉사단과 달리 한국 해비타트에서 일정을 거의 잡아주었기에 출국하기 전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별로 없었습니다. 그래서 출국하기 전까지 내가 정말로 해외봉사를 가는 건지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계절학기로 두 개의 수업까지 들어 더 정신없던 1월을 보내니 정말 출국일이 눈앞에 다가와 있었습니다. 마음도 몸도 채 준비되지 않은 것 같은데, 출국하는 날이 밝았습니다.
우리의 여정이 시작되던 1월 26일은 겨울비가 촉촉이 내린 다음날이었습니다. 수업을 같이 들었던 사람들과 종강기념으로 막걸리를 마실 만큼, 촉촉한 비 내음이 가득한 날이었습니다. 하지만 필리핀은 한국과 달리 따뜻하다 못해 더웠습니다. 심지어 비도 잘 내리지 않고 온통 쨍쨍한 날들이었습니다. 가끔 구름이 껴서 작업할 때에 선선한 날을 제공해주기도 했지만요. 그에 비해 한국은 전에 없는 한파였다고 하니, 우리가 참 적절하고 운 좋은 시기에 봉사를 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곳에서 우리가 한 봉사는 간단했습니다. 간단하다 못해 몸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일이었지요. 물론 건축팀에 한해서 그렇습니다. 우리가 활동했던 지역은 세부 섬의 맨 위 끝자락에 위치한 단반타얀이라는 곳으로 2013년 가을 태풍 하이옌에 의해 크게 피해를 입었던 지역 중에 한 곳입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해비타트의 이름 아래 건축봉사와 함께 서울대 보라매 병원에서 근무하고 계시는 두 분의 교수님과 한 분의 레지던트와 함께 의료 봉사를 했습니다. 의료팀은 의사 선생님들을 도와 보조 업무를 보았고, 건축팀은 땅을 파서 집터를 세우는 일을 했습니다. 총 9개월 정도의 집짓는 과정 중에서 우리가 한 부분은 초창기 부분으로 집짓기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단순한 일이지만 이 작업이 선행되어야 그 다음의 일이 진행될 수 있는 만큼 꼭 필요한 단계입니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이 단순한 노동은 단순한 만큼 쉽지는 않았습니다. 딱딱한 땅을 파는 일이라서 익숙하지 않은 우리에게 근육통을 잔뜩 안겨주었습니다. 또한 파도 파도 제자리걸음 같은 기분이 들어 얼마만큼 왔는지 보이지 않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왜 하필 우리가 이런 초기 단계에 와서 이 봉사를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벽돌도 쌓고, 페인트칠도 하고 지붕 올리기 같은 것도 하고 싶었는데 말입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일단 몸이 고단하니 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고, 또 직접 완성된 현장에 가서 완공 모습을 보니 어떤 단계든 필요하고, 그 단계들을 거치지 않으면 완성도 없다는 깨달음도 얻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료, 건축 봉사 말고도 우리는 PETA라는 단체와 함께 지역 주민들을 위한 공연을 준비하는 활동도 했습니다. PETA는 Philippine Educational Theater Association의 약어로 연극과 몸짓으로 서로의 생각과 마음을 나누는 행위를 하는 단체라고 합니다. 정확하게 어떠한 일을 하는 단체인지는 모르지만 그들이 도와주었던 것은 우리가 현지 주민들과 말이 없어도 소통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비록 말은 다르지만 우리는 우리가 느꼈던 일들과 감정을 춤과 몸짓, 노래를 통해 지역 주민들에게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 비록 이틀의 짧은 시간동안 준비해서 보여주었지만, 우리가 필리핀, 특히 단반타얀에서 도착하고 나서 겪었던 사건들과 느꼈던 생각들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를 말 한마디 없이 주민들과 나눌 수 있어 뜻 깊은 시간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주로 머물렀던 단반타얀은 매우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같은 섬임에도 불구하고 세부시티와는 사뭇 다른 곳이었습니다. 세부시티가 번잡하고 사람도 많고, 편의시설도 많은 곳이라면, 단반타얀은 사람은 많지만 한적하고 순수한 곳이었습니다. 어딜 둘러보아도 높은 건물이 없고, 내 눈이 닿는 시야마다 녹색이 우거진 숲과 초원을 담을 수 있고, 저녁엔 조용히 내려앉는 노을에 고요한 감동이 있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한국의 시골도 아름답지만, 처음 경험하는 열대의 겨울 시골 풍경도, 우리에게는 새로운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더 한국을 잊고 온전히 그 삶에 녹아들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일이 고단해서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던 것도 있고 잘 터지지 않는 와이파이 때문일 수도 있지만, 우리는 정말 누가 말하지 않았음에도 한국에서처럼 이것저것 걱정하지 않고 하루하루를 충만하게 살았습니다. 매 순간 매 순간마다 행복을 느꼈고, 작은 일에도 크게 웃었으며, 서로가 서로에게 진실했습니다. 한국에서도 그럴 수 있었을까. 새로움이 주는 마법은 언제나 놀랍습니다. 우리가 함께 한다는 사실과 나를 제약하는 어떤 것도 없다는 사실이 새로운 환경이라는 조건과 버무려져, 내가 나를 내려놓게 만듭니다. 조금씩 내려놓고, 일상에서의 내가 아닌 저 깊숙한 곳의 내가 나오는 시간. 모두가 함께 경험하는 내려놓음의 시간은 서로에게 비교할 수 없는 유대감을 선물합니다. 그래서 서로가 이렇게 좋은 것이겠지요. 앞으로도 많이 만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 봉사활동의 마지막 날은 온전히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었습니다. 세부시티를 돌아보고 각자가 원하는 음식을 먹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그럼에도 단반타얀에서의 일상이 생각났던 것은 왜일까요. 매일같이 땀을 흘리고 녹초가 되어 돌아온 몸으로 사람들과 밤늦게까지 이야기하고 바다를 보고 했던 일들이, 자꾸만 생각이 났습니다. 그 때 그 순간으로 돌아갈 수는 없겠지요.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은 너무나도 피곤했습니다. 좁은 비행기에서 쪽잠을 자고 새벽녘에 도착한 한국은 무척이나 추웠습니다. 비몽사몽간에 집에 가고 부족했던 잠을 보충하고 일어나니 하루가 다 가 있었습니다. 그제야 우리의 봉사활동이 드디어 끝났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더 이상 눅눅한 공기에 깨서 에어컨을 틀지 않아도 되고, 새벽같이 일어나 주섬주섬 옷을 입고 아침은 꼭 먹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식당으로 달려가지 않아도 되고, 밤마다 바닷가 앞 흔들의자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지도 못하고, 더 이상 해맑게 웃으면서 우리를 맞아주던 아이들의 얼굴도 볼 수 없게 되었음이 실감되었습니다. 마치 한바탕 신나는 꿈을 꾼 것처럼 모든 것이 너무나 생생하면서도 현실감이 없어 공허하기도 했습니다. 언제 또 가볼 수 있을지 모르겠어서 더 아쉬운 거겠지요. 그래도 삶을 살아가면서 언제고 돌아볼 수 있는 행복한 꿈이 하나 생긴 것 같습니다. 온전히 내가 나로 있을 수 있었던, 행복했던 9박 11일의 꿈 말입니다.
작성: 이지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