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지진으로 인한 네팔의 상처를 예술로 치유합니다."
- 서울대학교 네팔봉사단 -
"이건 지진을 그린 거에요."
소리를 듣고 떠오르는 이미지를 자유롭게 그리는 미술 테라피 시간이었습니다. 봉사단 선생님들에게는 천둥 치는 듯 한 쿠르릉 소리에 10살 아유쉬(Aayushi, KUHS 5학년)는 지진으로 무너진 건물을 그렸습니다. 겉으로는 여느 초등학생들처럼 밝디 밝은 모습이었지만, 그림 속 한 귀퉁이가 무너져 내린 건물처럼 아이들의 마음 속에는 지난 해 대지진으로 인한 상처가 자리하고 있는 듯 했습니다.
지난 해 수 차례 이어진 강진은 네팔에 경제적으로 큰 피해를 입혔을 뿐 아니라 만 여명이 넘는 사상자를 남겼습니다. 지진 직후 서울대학교는 "네팔 대지진에 따른 서울대 행동 강령"을 세웠습니다. 이에 따라 도시 재건을 돕는 1차 네팔봉사단을 파견하고, 모금 운동을 통해 네팔의 복구를 도왔습니다. 그리고 올해 8월, 아직 다 복구되지 않은 건물의 모습처럼 아직 상처가 남아있는 네팔 아이들의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 2차 네팔봉사단이 파견되었습니다.
비행기에서 내려서 본 네팔은 아름답기 그지 없었습니다. 높은 고도 때문에 한국보다 훨씬 낮은 하늘, 여름답지 않은 선선한 공기,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웅장한 자태의 히말라야까지. 그러나 곧 단원들은 곳곳에 무너진 건물들을 보며 이렇게 아름다운 네팔을 할퀴고 간 작년 대지진의 상처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때문에 네팔 아이들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걱정하며, 첫 학교인 카트만두 부속 고등학교(이하 KUHS)로 발을 옮겼습니다.
KUHS 학생들과의 첫 만남, 언어의 장벽을 넘어 음악과 미술로 소통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함박 웃음을 지으며 봉사단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는 학생들을 보자 걱정은 설렘으로 바뀌었습니다. 지리 수업시간에 배운 세계지도를 가지고 와서 한국이 어디냐고 물어보는 히덴(Hiten, KUHS 5학년)처럼 다들 봉사단이 신기했던 모양입니다. 마이크도 없이 빈 공터를 꽉꽉 채우는 성악과 전문가 선생님 세 분의 멋진 무대와, 봉사단 학생들의 춤 공연, 그리고 이에 답하는 KUHS 학생들의 네팔 전통 춤 공연으로 인사를 마친 봉사단과 KUHS 학생들은 음악과 미술 수업에 들어갔습니다.
말은 잘 통하지 않았지만, 노래와 그림으로 마음과 마음을 나누는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게다가 우리나라와 같은 예술 교육이 별로 없는 네팔 학생들에게는 더더욱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함께 한 카드만두 대학생인 칸찬(Kanchan, 카드만두 대학교 토목공학과 4학년)도 “네팔에는 악기를 이용한 수업이 없어 새로운 경험이다.”라며, 한국 학생들의 생각보다 봉사단의 수업이 네팔 학생들에게 큰 의미임을 알려주었습니다. 핸드벨, 탬버린, 실로폰 등등 다양한 악기들에서 나는 신기한 소리들을 귀 기울여 듣는 아이들의 모습에 마음이 벅차 올랐습니다. 처음 다뤄보는 악기인지라 박자며 음이며 제각각 이었지만, 단원들의 귀에는 한국에서 들었던 그 어떤 음악보다 더 감미로운 음악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미술 시간에는 처음 접해보는 한국의 먹물과 형형색색의 물감을 이리저리 사용해보며 자신만의 그림을 그리는 학생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또 단순히 미술을 교육하는 것뿐이 아니라 미술 테라피를 통해 아이들이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봉사단 선생님들 중 열에 아홉은 천둥소리라고 생각한 쿠르릉 소리에 많은 네팔 아이들이 지진으로 무너진 건물을 그렸습니다. 밝아만 보이는 아이들이었지만 지난 해 지진의 아픔이 알게 모르게 아이들 마음 가운데 숨어있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활동, 미래에 살고 싶은 장소 등을 그리는 활동을 하면서 웃고 떠드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단원들은 오늘 수업시간이 아이들의 아픈 마음을 달래주기를 바랐습니다.
봉사단이 준비한 프로그램을 생각한 것보다 훨씬 반겨 하는 아이들의 모습에 고마움까지 들었습니다. 이틀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아이들 추억 한 켠에 봉사단과의 만남이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있으면 좋겠습니다.
네팔의 공휴일인 17~19일, 땀 흘리는 노력봉사와 문화교류로 네팔의 축제를 장식해
17일부터 19일까지 이어지는 네팔의 휴일을 맞아 봉사단 학생들은 노력봉사에 참가했습니다. 17일 명절을 맞아 뒷산에 모여 장터를 열고 축제를 여는 네팔 사람들 사이에서 봉사단은 의료봉사와 건축봉사를 준비했습니다. 의료부스를 열어 응급환자를 돕고, 친환경적으로 디자인 한 체육관 건물의 기초 공사를 하며 학생들은 땀 흘리는 봉사의 소중함도 배워갔습니다.
또 18일에는 작년에 죽은 자들의 넋을 기리는 가이 자트라(Gai Jatra)를 맞이하여 네팔 대학생들과 문화교류의 시간도 가졌습니다. 먼 옛날 왕자의 죽음을 슬퍼하던 여왕에게 남겨진 사람들이 잘 살고 있음을 보여주며 위로하기 위해 시작된 이 축제는 한국의 제사와는 느낌이 정반대입니다. 웃고 춤을 추며 큰 소리로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을 보며, 한국 학생들은 네팔의 문화를 체험하고, 함께 한 네팔 대학생들과 문화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19일에는 지난 번과 이번 네팔 봉사단 활동에 큰 도움을 준 두리켈 병원을 탐방하고 네팔의 산지에 쓰레기통을 설치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우리나라 금수강산 못지 않게 아름다운 풍경을 가진 네팔이었지만, 쓰레기통이 없어 땅바닥에 그대로 버려진 물병이며 과자봉지들이 눈살을 찌푸리게 하였습니다. 단원들은 튼튼한 철제 쓰레기통을 직접 들고 올라가 땅을 파고, 시멘트로 고정시키고 그 위에 예쁜 색을 입혔습니다. 오늘의 작은 활동이 네팔 환경보존에 큰 발걸음이 된다는 생각으로 단원들은 몸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산길을 따라 설치된 쓰레기통들이 오늘도 네팔의 산을 더욱 깨끗하게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산지바니(Sanjiwani) 고등학교, 무너져 내린 학교 속 아이들을 만나다
슬레이트로 사방을 둘러 간신히 바람만 막는 정도의 임시교실에 학생들이 빼곡히 앉아 있습니다. 흙 바닥 위에 그대로 지어져서 조금만 발을 굴러도 교실이 흙먼지로 뒤덮이는 통에 금새 목이 쓰라렸습니다. 방음이 안 돼 옆 교실의 소리가 그대로 들리고, 전구도 없어 낮에도 어두컴컴한 임시교실은 상상 이상으로 열악했습니다. 네팔봉사단이 찾아간 두 번째 학교는 바로 산지바니 고등학교였습니다. 이곳은 지난 학교보다 작년 지진으로부터의 피해가 더 직접적이고 심각했습니다. 아직도 무너진 구 교실이 그대로 남아있고, 학생들은 지진 후 1년이 지난 지금도 임시 교실에서 수업을 받고 있었습니다.
임시교실은 흙투성이였지만, 그곳에는 그런 환경 속에서도 때묻지 않은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여느 아이들처럼 호기심도 많고, 배움의 열의도 많은 산지바니의 학생들은 어려운 환경에 있었지만 별다를 것 없는 “아이”들이었습니다. 오히려 선생님들이 가르쳐 주는 노래 하나하나에 더 귀 기울이고, 순수한 창의력으로 누구보다 멋진 그림을 그려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아이들에게도 이틀간의 경험이 돌아보면 행복한 추억이 되었으면 합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네팔과 소중한 관계를 잇고 온 봉사단
봉사단의 신승원(언어학과 12학번) 단원은 “봉사도 결국 서로와 서로가 관계를 맺는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아흐레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신승원 단원의 말처럼 봉사단은 네팔과 뗄래야 뗄 수 없는 소중한 인연은 맺고 왔습니다. 며칠간의 교육과 봉사활동이 지진으로 인한 네팔의 모든 상처를 다 덮을 순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단원들이 맺은 값진 인연은 귀국 후에도 네팔에 고스란히 남았습니다. 네팔 산지에 세워진 조그만 쓰레기통들과, 산 위에서 흘린 봉사단원들의 땀방울들, 그리고 무엇보다 음악과 미술 수업을 통해 네팔 아이들 마음 속에 남은 웃음꽃 하나하나가 네팔을 치유하는 씨앗이 되기를 바랍니다.
(글로벌사회공헌단 = 강상우 소셜 에디터)